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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이야기는 비루한 것들로부터 시작한다. 유의미한 쓸모를 기대하며 만들어졌지만 결국에는 버려지거나 방치되는 것들, 일상적이기 때문에 특별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사물을 보며

어쩌면 그것과 다를 바 없는 상황에 놓인 나 자신을 떠올렸고 이를 인간 군상에 유비하여 작업한다.

 

 일상의 주변에서 채집한 사물의 이미지를 기록과 동시에 지워내면서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여러 모순을 물질로 재현하는데, 주로 흙 빚기나 뜨개질 등 반복 노동을 주축으로 하는 조형 언어를 사용한다. 동시대에서 해악처럼 여겨지는 비효율의 수공노동 과정에서 작품의 표면에는 수만 개의 손자국이 남게 되지만 동시에 흙을 짓누르는 행위 같은 손의 권력으로 인해

많은 것들이 억눌리고 지워진 화면이 제시된다. 몸과 시간의 흔적을 매체위에 고스란히 남기면서도 기존 시스템이 가진 특징적인 이미지를 지워버리는 역설을 통해 있으면서도 동시에 없을 수밖에 없는 익명인에 관해 이야기 한다. 기록과 상실의 조형적 메커니즘을 인간 존재와 부재의 동시성으로 확장하고, 존재의 부조리를 긍정함과 동시에 모순을 통해 다양한 경계를 허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작업의 갈래는 반복을 통해 그림자 노동을 그려내는 실천으로 뻗어나가기도 한다. 병렬 반복 그리고 수평적 구조를 보여주는 다양한 매체와 체화된 기술을 이용하여 이 노동을 가시화한다. 짧은뜨기 기법으로 반복하는 뜨개질 작업 또한 같은 맥락에 있는데, 도예에서 코일링 기법과 마찬가지로 섬유에서 짧은뜨기 기법 또한 일정한 행위를 통해 일정한 간격을 가진 화면을 만들어내면서 마띠에르의 유사성을 발견한다. 이를 통해서는 특히 여성의 노동을 이야기하면서 파편으로 남은 몸의 흔적을 보여준다.

  

 최근의 조형 실험은 관찰하는 시선에서 만지는 촉각으로 옮겨간다. 빈 의자는 인체의 비율을 본뜬 덩어리의 스케일과 형태, 그리고 그것의 용도에 의해 사람을 떠올리는 정물로 선택된다. 익명 노동의 주체인 몸이면서 각각의 모순적 상황으로 연출된 이 덩어리들은 완전한(정상의, 성인의, 남성의, 비장애인의) 몸임을 거부하며, 정상성과 이분법의 경계를 흐리게 하면서 주체성을 찾기를 원한다. 인간을 닮은 사물은 신체와 각별한 관계를 유지하게 되는데, 여기에 스킨십이나 포즈와같은 몸 엮기의 표현방식을 융합한다. 형태는 점점 분열하고 기괴하게 접합하며 미지의 곳으로 확장해 나가고, 몸의 상호작용인 접촉으로 서로를 감각하는 사물들은 더욱 적극적으로 신체와 교감하게 된다. 지속적인 매체 연구를 진행 중이며 연약한 살, 단단한 흙의 형태, 흐느적거리는 천, 규격화된 종이박스 등 극명하게 대비되는 매체를 계속해서 반복/병치해 나감으로써 모순의 무한한 변주를 만들어나간다.

 

-문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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